반온

성공주의를 향한 반문

성공주의 시대 앞에 성공의 진정한 정의를 묻는다.

류하은
haeunlyou@gmail.com

성공과 경쟁의 공격 그리고 잘 사는 삶

“ 이 시대를 살아가는 스물여섯의 나에게 가장 실감나는 공격은 무엇일까.” 본 프로젝트는 내가 체감하는 공격의 실체를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수많은 위협과 스트레스를 갈무리할수록 모든 것을 아우르는 본질은 결국 남보다 성공적인 결과를 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쟁의식, 곧 성공과 경쟁의 공격임을 알 수 있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용을 내는 것이 중요한 자본주의 시대, 그리고 이 시대를 주도하는 성공주의의 기조 속에 우리는 실패가 왜 두려운 것인지 끊임없이 학습한다. 실패할 경우 노력은 쓸모없는 소비로 비판받으며, 노력의 주체는 그 존재 자체에 대한 비난과 부정마저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보다 성공적인 결과를 성취하고자 치열한 경쟁의 굴레에 참여하여 과정의 윤리나 개인의 인격 따위는 수시로 위협당하는 일상을 묵묵히 견뎌낸다. 이러한 외부적 정의에 순응해갈수록 우리는 점차 존재의 가치마저도 자신이 얼마나 쓸모있는 지를 입증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현대사회의 청년들이 남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하고자 발버둥치는 것은 바라는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라는 그럴싸한 목적 이전에 존재의 가치를 찾기위한 안쓰러운 허덕임이다. 이토록 스스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역설적인 현실에서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존재의 의미는 결코 성공에 있지 않다.

이처럼 존재의 가치가 능력에서 비롯되는 숨가쁘고 치열한 성공주의의 한가운데서 나는 진정한 성공의 정의를 묻는다. 그리고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찾는 일은 결코 명료한 수식을 따라 답을 도출하는 일처럼 간단하지 않다. 잘 사는 삶을 위해서는 방황이 필요하다. 수많은 질문과 경험을 통해 나에게 적용되는 성공의 정의를 새롭게 찾아 나가야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함께 삶을 헤메일 누군가가 필요하다. 기약없는 헤메임에 지칠 때 함께 기대어 앉아 서로를 떼어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그래서 우리의 삶은 혼자서는 결코 온전해 질 수 없다. 남의 것을 앗아 내 몫을 지켜야 살아남는 이 시대는 우리에게 서로가 경쟁하길 끊임없이 부추기지만 사실 온전한 삶은 홀로는 도무지 온전해질 수 없는 두 개체의 연합, 곧 나와 타인의 관계로 인해 그 존재를 찾는다. 관계는 삶을 위하는 근거이자 근본이 된다. 프로젝트의 모티프가 되는 반원은 물질적인 결과가 목적이 되어가는 현대에 ‘ 관계’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는 상징이 되어 우리에게 진정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반추하게끔 한다.

사각형은 반으로 나누어도 사각형이다. 삼각형 역시도. 그러나 원은 반으로 나누면 그의 존재를 잃게된다. 제 아무리 예리한 각도로 시도해도 원을 나눈 결과는 홀로는 온전할 수 없는 반절, 반원일 뿐이다. 우리의 삶은 반원 두 개가 모인 원과 같다. 서로를 긴하게 의지하여 균형을 유지하는 수많은 반원의 모빌은 우리가 서로를 통해 살아내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또 멀리에서 관조하게끔 한다. 본 프로젝트는 첨단의 끝을 내달리는 우리들에게 오히려 존재의 출발점으로 돌아가야하는 질문을 던진다. 성공을 위한 열심을 훈련하기 이전에 진정 잘 사는 삶이란 과연 무엇일지 그 정의를 고민하는 우리가 되길 바라본다.




존재의 가치가 능력에서 비롯되는 숨가쁘고 치열한 성공주의의 한가운데서 나는 진정한 성공의 정의를 묻는다.




성공주의에서 강요되는 물질적 풍요와 성취는 삶의 해답이 아니다. 잘 사는 삶을 위해서는 방황이 필요하다. 수많은 질문과 경험을 통해 성공의 새로운 정의를 찾아 나가야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함께 삶을 헤메일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약없는 헤메임에 지칠 때 함께 기대어 앉아 서로를 떼어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혼자서는 온전해 질 수 없다.





사각형은 반으로 나누어도 사각형이다. 삼각형 역시도. 그러나 원은 반으로 나누면 그의 존재를 잃게된다. 제 아무리 예리한 각도로 시도해도 원을 나눈 결과는 홀로는 온전할 수 없는 반절, 반원일 뿐이다.

우리의 삶은 반원 두 개가 모인 원과 같다.





남의 것을 앗아 내 몫을 지켜야 살아남는 이 시대는 서로가 경쟁하길 끊임없이 부추기지만 사실 온전한 삶은 홀로는 도무지 온전해질 수 없는 두 개체의 연합, 곧 나와 타인의 관계로 인해 그 존재를 찾는다.

관계는 삶을 위하는 근거이자 근본이 된다.